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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아빠가 아이의 숙제에 감동한 사연

2011년 4월 8일에 발행된 글입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아내와 늦잠 자는 딸과 아침부터 블로그에 빠져있는 꼴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 너 어제 숙제 안하고 잤지? 얼른 일어나서 숙제하고 어린이집 갈 준비해!!!" 

엄마의 불호령이 군 시절 기상나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립니다. 아이는 숙제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납니다. 다행입니다. 숙제 안해가던 꼴찌를 닮지 않아서...


아이는 책가방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습니다. 



 가정조사활동 기록지 라고 적혀있는 종이에는 부모가 함께 답을 적는 문제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딸이 직접 낸 문제라고 하더군요.  

" 꽃은 왜 향기가 나요? "
" 꽃 가루가 있어서..."

아이가 직접 문제를 내고 직접 쓴 답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꼴찌는 두 번째 질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 암술, 수술은 무엇일까요? "
" 벌에 의자 같아요 "

암술, 수술이라는 기관에 대해 벌에 의자라고 적은 답을 처음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 꽃에 있는 암술, 수술 몰라?
  벌에 의자가 뭐야...? " 

오히려 제가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한번 더 깜짝 놀랐습니다.


               " 벌이 살짝 살짝 앉았다가 가자나... 그러니까 벌에 의자지..."

                                                                         ▲ 2009년 6월 신도림천에서 촬영한 사진


                       

 
아내와 저는 둘 다 놀랐습니다.

암술과 수술의 생물학적 기능을 모르면 어떻습니까?
아이의 참신한 시선과 생각이 저를 기쁘게 했습니다. 고슴도치 100단인 저는 아이를 꼭 껴안아주고 뺨에 뽀뽀세례를 날렸죠. 

그런데, 아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내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친구들의 생각을 따라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갑자기 찬물을 확 끼얹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가 평소 문화센터나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답도 친구의 답을 따라 했을 것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아내의 생각이 객관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살짝 다시 물었습니다. 

" 친구들도 이런 질문을 한거야? "
" 아니야... 친구들은 다른 질문 썼고, 난 꽃이 좋으니까 이 질문을 한거야..."

전 아이의 생각을 믿기로 했습니다. 

이제 부모의 답을 적을 차례입니다. 


꽃은 왜 향기가 나요?

딸    : 꽃가루가 있어서...
엄마 :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라고...
아빠 : 나비 오라고~

뭔가 재미있는 대답을 적고 싶었는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더군요. 

두 번째 질문에 답할 차례입니다.

 
" 암술, 수술은 무엇일까요?" 

딸    : 벌에 의자 같아요.
엄마 : 꽃의 씨앗을 만들게 해주는 기관
아빠 : 엄마, 아빠와 같이 꽃에게 중요한 것


아이가 직접 낸 문제에 엄마, 아빠가 함께 답을 적는 형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은 문제를 직접 내도 좋고, 아이가 낸 문제에 답을 적어도 좋고 중요한 것은 부모와 아이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의 감성을 소유하며 자라주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마도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아내와 수 차례 언쟁과 마찰이 있을 수 있지만,

아이에게 소중한 것이 감성이라는 생각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아이가 자라면서 성적위주의 경쟁에 치이게 되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앞섰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려했던 카이스트의 자살 소식이 또 다시 들려와 안타깝습니다.  
벌써 4번째 자살소식. 단순히 베르테르 효과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가 대학에 갈 때 쯤이면 아빠가 큰 돈을 벌지 못했더라도 아이의 감성만으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 올까요?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

그렇죠? 망상이고 판타지겠죠?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희망 조차도 없으면 하루가 느낌없고 재미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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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crabbit.tistory.com/ 굴뚝토끼 2011.04.08 07:02

    아빠는 감성 200%인데 엄마는 감성 -100%.....
    '여자'는 안그런데 '엄마'들은 왜 그럴까요?...^^

  • Favicon of http://v.daum.net/my/hls3790 옥이 2011.04.08 07:21

    벌의 의자.. ㅎㅎ
    그러게요~~~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windlov2.tistory.com 돌이아빠 2011.04.08 07:22

    벌의 의자..라는 답 정말 참신하고 기발하고(사실 이런 단어들이 적절하지는 않는듯 한데 제 한글실력과 표현력이 이정도 밖에 안되서 ㅠ.ㅠ) 멋진 답이네요. 아! 정말 예쁜 답이네요~

    너무 좋으시겠어용~~~~~

  • Favicon of http://gimpoman.tistory.com 김포총각 2011.04.08 07:24

    정말 귀여운 답이네요.
    한편으론 이런 창의성과 감성을 키우지 못하고 지식만을 심어주는 우리 교육이 안타깝기도 하고요.

  • Favicon of http://www.2sisters.kr/ 두자매이야기 2011.04.08 07:43

    아이들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한듯
    의자 맞네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tourparis 샘물 2011.04.08 07:44

    답을 보니 너무 기발한데요.
    역시 아이들의 기발함은 못따라가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kangdante kangdante 2011.04.08 07:57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어른들보다야
    아이들의 생각이
    더 신선하고 아름다울 때가 많습니다.. ^.^

  • Favicon of http://jsapark.tistory.com/ 탐진강 2011.04.08 08:07

    감성 인성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좋은 글이네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달려라꼴찌 2011.04.08 08:11

    벌의 의자 맞네요 ^^;;;
    그런데 몇학년인데 저렇게 내용이 어렵죠? 전 암술 수술 3학년쯤되어서 배운 것 같은데...ㅡ.ㅡ;;;

  • Favicon of http://sosmikuru.tistory.com 노지 2011.04.08 08:16

    맞아요. 이런 따뜻한 감성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

  • Favicon of http://harangmom.tistory.com 하랑사랑 2011.04.08 08:45

    이맘때 아이들은 서로 모방하면서도 많이 배우더라구요.
    친구 이야기도 내것처럼 혹은 내 이야기도 친구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의 것까지 상상력도 키우고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끼리 유대감 같은 것들도 느끼고...아이들은 그것들을 굳이 따라한다는 생각들도 안하더라구요.
    그냥 생각이 비슷하고 같을 수도 있다 정도? ㅋㅋ 예전에 수업할때 아이들 보고 느낀 것들이 생각나서요.
    한마디로 모방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공부더라구요 ^^
    물론 따님은 그게 아니라 했고 혹시라도 그렇더라도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정말 기발하네요...벌의 의자...흠...저도 생각했는데
    부모의 대답들...꼴찌님네 아내분과 꼴찌님 이상의 답변은 못 찾겠습니다. ㅋㅋㅋ
    저도 너무 어른이 되었나봅니다.

  • Favicon of http://blog.daum.net/phjsunflower 꽃집아가씨 2011.04.08 08:57

    아이의 상상력이 최고입니다.
    의자같다라는..
    순수함을 지금은 잃었지만 예전엔 많이 그런생각을 했거든요
    ^^ 근데 아무도 칭찬을 안해준 ㅠㅠㅠ

    아이가 크게 될거같은데요^^

  • Favicon of http://daddymoo.tistory.com 아빠소 2011.04.08 09:09

    참 참신한 아이디어네요. 유치원에서 저런 숙제를 내기도 하나보네요.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참여수업, 참여교육인데요? 어른들 답보다 아이의 답이 제일 정답같습니다 ^^

  • Favicon of http://blog.daum.net/parismadame 파리아줌마 2011.04.08 09:49

    음~~ 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엄마, 아빠, 아이와 함께 문제 풀어보는 모습이 좋습니다.
    감성과 이성이 골고루 균형을 이루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ribi.tistory.com 은벼리파파 2011.04.08 11:49

    아이의 순수함이 그대로 느껴지는군요.
    가끔씩~ 아이들에게서 어른들은 상상조차 못할 그런 순수한 생각들을 들을때면...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 Favicon of http://toyvillag.net 라이너스 2011.04.08 11:58

    자상한 아버지세요^^
    잘보고갑니다. 멋진 하루되세요^^

  • 늘푸른나라 2011.04.08 14:10

    반갑습니다.

    재미 질문과 답이네요.

    아이의 순수성을 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되세요.

  • Favicon of http://kung2.tistory.com 놀다가쿵해쪄 2011.04.08 15:20

    정말 어른들은 상상할수도 없는 그런 답변이네요..
    꼴찌님의 암술,수술 답변도 훌륭하십니다요~

  • Favicon of http://blog.daum.net/iamcarol carol 2011.04.08 23:17

    "벌의 의자 같아요~~"ㅎㅎ
    전 이래서 아이들이 좋아요

    어른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느낀 대러 적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 한것이..
    이런 순수와 감성 아닐까요?

    그렇게..우리아이들이 자랐으면 좋겟어요

    너무나 공부와의 전쟁 속에서 끌려 다니는 아이들이
    안되길 .. 정말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leebok.tistory.com 빨간내복 2011.04.13 05:41

    정말 너무나도 예쁜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