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3일 <메가박스 동대문> 에서 열린 영화 <황해>제작보고회에 참석했었습니다. 영화 <추격자>로 첫 장편 데뷔작에서 흥행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나홍진 감독과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배우 하정우, 김윤석의 트로이카 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는데요. 처음 참석해 본 영화제작보고회에서는 짧은 티져영상과 제작기 정도만 공개되어서 영화가 어떤 내용일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후반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거친 화면의 예고편이 오히려 더 큰 기대심리를 일으켰습니다.
예상기간보다 더 오랜 제작기간이 걸려 제작한 영화<황해>의 제작보고회를 마친 그 날 오후, 공교롭게도 서해에서 연평도 사건이 발발했습니다. 큰 연결고리 없는 우연한 사건이었습니다만, 영화계에서는 개봉시기에 어떤 사건이 영화의 흥행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어서 혹시 이 영화에 연평도 사건이 미치는 영향이 있지 않을까 주목하며 개봉을 기다렸습니다.
지난 10월 말 프로젝트를 끝내고 거의 모든 한국영화를 관람하다싶이 했는데요. 주로 평일 조조에 동네 영화관에 가면 관객도 없고 영화관을 전세 낸 느낌으로 영화에만 몰두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오전 9시 조조로 영화를 관람하러 갔는데, 예상외로 오전 9:00 상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 좌석의 반 가량이 관객들로 채워져 여느 때와는 달리 '이 영화가 대박조짐을 보이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배우 하정우의 나래이션으로 시작합니다. '개병'이라는 잘 알지 못할 병에 대해 서술하면서 구남(하정우)이 도박판에 빠져 있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프롤로그부터 80년대 초 비디오로 즐겨보던 홍콩 느와르 식의 누리끼리하고 어두운 미장센이 영화의 마초적인 분위기를 예고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영화 감상 전 화장실 먼저 다녀오는 건 필수사항입니다. 영화 <아바타>감상할 때 1시간 반 가량 지난 후부터 제 신장과 방광을 탓하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던 걸 생각하면 이 영화가 아바타 만큼이나 긴 런닝타임이라는 사실을 감안해서 불가피한 상황을 연출하는 일은 없으셨으면 합니다.
영화는 1.택시 운전수 2. 살인자 3. 조선족 4.황해 이렇게 4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옴니버스 식의 영화도 아닌데 왜 이렇게 챕터를 나눴는지는 내공이 부족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6,000위엔의 빚을 갚기 위해 도박판에서 고군분투하는 구남(하정우)에게 면가(김윤석)가 한국가서 누군가의 엄지손가락을 잘라오면 모든 빚을 갚아주겠다는 청부살인을 제안합니다.
한국으로 일하러 간 아내가 연락이 끊긴 상태고, 아내도 찾을 겸 빚도 갚을 수 있는 상황이라 고민끝에 밀항을 선택하지만 구남에게 벌어지는 얼키고 설키는 관계와 살인자라는 누명이 관객의 호흡을 가다듬게 합니다.
그리고 영화 <추격자>를 연상케하는 추격씬과 <올드보이> 도끼 액션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피 튀기는 액션씬. 이 정도가 제 기억에 남는 영화의 잔상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합니다만 원인과 결과 부분에서 꼴찌는 헷갈립니다. 정신줄 놓고 영화 감상했다가는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클 수 있는 영화 같습니다.
영화의 스포일러는 삼가하는 편이라 영화의 마지막 엔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항상 강조하듯 영화는 관객의 것!... 영화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배낭하나 메고 사전조사와 취재를 나섰다는 나홍진 감독님의 땀과 열정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하얼빈 현지 제작과 알아듣기 힘들 정도의 연변사투리를 통해 극의 리얼리티에 충실했습니다. 제작보고회에서 어느 기자의 질문이 실제 연변사투리와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었는데, 전 구분을 못하겠습니다만 관객이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 쉬울 정도로 가공한 부분도 있다고 합니다.
'스크린에서 발냄새가 날 정도로 배우 하정우가 이번 영화에서 고생이 많았다'는 배우 김윤석님의 말대로 영화는 배우 하정우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 장시간 배를 타고 바다에 빠지는 장면부터 산 속을 헤매는 장면까지 디스커버리 다큐 채널에서 본 서바이벌 다큐를 연상케 하는 장면처럼 '집 나오면 개고생(?)' 을 실감케 합니다.
여기에 돼지 족발(?)을 무기로 삼을 정도로 실제 싸움은 이런식으로 하는것이다!를 보여주는 배우 김윤석. 개인적으로는 이제 캐릭터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슷한 말투와 변함없는 너털웃음이 그의 매력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팬으로서 다른 모습의 역할을 기대해 봅니다.
제작보고회에서 실제 나홍진 감독을 처음 보면서 어쩜 저렇게 인터뷰를 못할까 했는데, 역시 모든 영상쟁이들은 영상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제 격인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 무슨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는지는 사실 영화를 읽는 내공이 부족해 파악하기는 힘들었습니다만 한 가지 명확하게 알게 된 사실은 나홍진 감독은 독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작은 체구에 웬만한 고집없이는 대형 차량 전복씬이라던가 이름있는 배우들을 찬 바다에 뛰어들게끔 연출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나홍진 감독만큼이나 영화에 대한 열정 가득한 뚝심있는 두 배우 였기에 가능했던 작업이 아니었을까 예상해봅니다.
몇 달전,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감상하고 그 영화에 대해 '배설을 통한 카타르시스' 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잔혹할 정도로 피튀기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배설이라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장면들의 농도와 밀도가 그만큼 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도 영화를 한 번 더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마초적인 피의 향연. 지독한 세 남자의 고집있는 영화 <황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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