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15분.
비행기가 추락하는 꿈에 놀라 깼습니다. 요즘 며칠동안 어수선한 꿈을 꿉니다. 트위터에 짧은 독백을 남겼더니 누군가 멘션(리플)을 달았습니다.
"꿈은 꿈일 뿐이죠. 키 크는 꿈일지도..."
이 짧은 한 마디에 불안했던 기분이 담배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키 크는 꿈...
'난 아직 청춘이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그럴듯한 합리화를 하면서 조용한 작업실에서 볼륨을 조절하고 음악을 틉니다.
아날로그소년 의 <행진>
귀를 스치는 출발의 신호~ 난 첫발을 디뎌 오늘은 기적을 믿어~
이제부턴 힘든 외로운 나의 질주~ 돌이킬 수 없어 끝없이 달릴 뿐~
(중략)
Track 5. 마라톤 이라는 제목의 곡 가사 중 일 부분입니다.
음반자켓 디자인이 참 인상 깊습니다. 일러스트를 통해 표현된 아날로그소년의 모습에는 에너지와 열정이 담겨있는 듯 했습니다. 마치 Track 5.마라톤의 첫 가사처럼 신발 끈 묶고 빛나는 태양과 눈을 맞추고 달리 듯...
'모여라' '마라톤' '내 세상' '기록' '계획엔 없어요' 등 총 13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자유를 상징하는 힙합 장르만큼이나 가사나 리듬이 흥겹습니다. 힙합이지만, 인디밴드 음악스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주 이색적이지도 않으며 마흔을 바라보는 꼴찌도 듣기 편한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꼴찌들을 위한 상식 하나! 글 작성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요.
이 앨범의 Track 4번(락커룸. 5분전)과 9번 (D-1) 은 skit 이라는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skit] n.
1 (짧은) 희문(戱文), (…의) 풍자문; 촌극, 소희극《on ...》.
2 조소.
1 (짧은) 희문(戱文), (…의) 풍자문; 촌극, 소희극《on ...》.
2 조소.
(skit)은 음반 내에 곡이 없는 촌극 형태의 나래이션과도 같은 형식이라고 합니다.
Track 4번 '락커룸, 5분전'이라는 제목의 skit 입니다.
- "야! 뛸 수 있겠냐? 네"
- 너 지금 다리상태 안 좋은 것 같아 내년을 기약하자
- 감독님!
- 응?
- 감독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 무슨 소리야?
- 전 지금입니다. 갈게요...
마치 영화 대사처럼 이 대목에서 아날로그 소년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요?
이 포스팅의 제목을 <힙합을 통한 청춘의 기록>이라고 정한 이유는 Track 12. 기록 이라는 곡을 듣고 난 후 느낀 감정때문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아날로그 소년은 소위 말하는 88만원 세대입니다. 12번 트랙의 '기록'이라는 곡을 듣다보면 흥겹고 신나는 다른 곡과는 달리 지금 20대 후반 방황하는 젊은 청춘의 넋두리가 담겨있는 듯 합니다.
12.기록 (2절)
좋은 음악 하겠다며 그렇게 살겠다며
세상에 쿨한 척 혼자서 전부 다해가며 지내왔지만
내밀었던 명함은 백지
채찍질 해보지만 내 기대치와는 비대칭
몇 번의 알바로 받았던 대가는
아무생각하기 싫어 마신 술과 담뱃값
서글픈 내 청춘에 대한 자책감
그건 내가 치러야 할 자신에 대한 죗값
또 이렇게 술 취한 밤 밀려드는 불안감을 억누르기 위해서
차가운 물 한잔 들이켜고 잠에 들어본다
부모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집에 손 벌리기 싫어서 억지로
거짓말 했어요 어머니 미안해요
자랑하지 못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자존심에게도 미안해요
좋은 음악 하겠다며 그렇게 살겠다며
세상에 쿨한 척 혼자서 전부 다해가며 지내왔지만
내밀었던 명함은 백지
채찍질 해보지만 내 기대치와는 비대칭
몇 번의 알바로 받았던 대가는
아무생각하기 싫어 마신 술과 담뱃값
서글픈 내 청춘에 대한 자책감
그건 내가 치러야 할 자신에 대한 죗값
또 이렇게 술 취한 밤 밀려드는 불안감을 억누르기 위해서
차가운 물 한잔 들이켜고 잠에 들어본다
부모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집에 손 벌리기 싫어서 억지로
거짓말 했어요 어머니 미안해요
자랑하지 못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자존심에게도 미안해요
이 곡을 들으며 잠시 20대 중반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한 달 44만원의 월급을 받고 비정규직으로 AD보조라는 직함을 가지고 발냄새 지독하게 뛰어다녔던 예능프로 스탭시절. 그 때는 막연하지만 꿈을 가지고 뛰어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제가 품고 있던 꿈을 꼴찌는 이루었을까요?
이 앨범의 타이틀 <행진>처럼 아날로그소년은 힙합을 통해 자신의 청춘을 기록하고, 포기하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소년처럼 행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어수선한 꿈을 꾸다가 깨서 글을 정리하는 동안 '청춘'에 대해 '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새 해 목표로 삼은 블로그를 통한 컨텐츠 생산과 소통 이라는 명제를 위해 아날로그소년 처럼 꼴찌도 행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앨범에서 느낌 돋은 Track 5. 마라톤의 후렴구를 흥얼거립니다.
쉼 없이 달리는 내 생에 마라톤(Hey!~)
저 멀리 결승점 보이지 않아도 (Ho!~)
오늘도 달린다 누가 날 말려줘 (Hey!~)
길이 보이니까 난 그 길을 달려 달리고 또 달려도 내 선택은 (Say Ho!)
제가 악몽이라 생각했던 꿈을 누군가는 키 크는 꿈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려있고,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열정임을 깨닫게 한
아날로그소년의 <행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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