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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딸에게 들려 준 옛날이야기 # 매니큐어를 칠한 손이 부끄러워

 

 

 

 

프롤로그

 

딸에게 좋은 아빠란 어떤 아빠일까?

 

2013년 버킷리스트 53중 한 가지는 <아이와 함께하는 취미 53가지 만들기> 항목이다. 아이와 함께 여행하면서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녀석은 여행을 싫어하는 것 같다. 동네 놀이터가 녀석에게는 가장 좋은 여행지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에는 아이와 함께 질문하고 답하라 는 내용이 담겨 있다. 책의 내용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잠들 기 전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옛날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딸의 나이 때 겪었던 논픽션이다. 리얼리티가 담겨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공감하는 것이 '이야기' 일 것이다.

 

딸에게 들려 준 옛날이야기 # 매니큐어에 얽힌 추억

 

방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데 딸이 찾아와 들뜬 음성으로 자랑하기 시작했다.   

 

"아빠! 나 매니큐어 발랐다!" 

"예쁘네" 

 

말랑말랑하게 자랑하는 딸에게 건조하게 답했더니, 

 

"아...참 잘 봐봐~"

"뭘?" 

 

(손가락을 펼치며)

 

"색깔이 다르잖아..." 

 

 

 

아이의 손톱에는 노랑, 초록,파랑, 보라 등의 색이 칠해져 있었다.

 

"엄마한테 안 혼났어?"

 

아내의 매니큐어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르지만, 이것저것 꺼내 바르고 또 혼나는 건 아닌지 염려가 앞섰다. 

 

"엄마한테 혼나긴 왜 혼나... 내 색연필로 칠한 건데..."

 

잠자리에서 딸에게 들려준 옛날 이야기 "매니큐어를 바른 손이 부끄러워"

 

사실, 딸은 성격이나 외모나 모든 면에서 나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아내한테 더 혼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ㅋㅋㅋ 나를 닮은 녀석에게 내가 딸의 나이 때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에서 딸에게 내가 일곱 살 때 겪었던 매니큐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 기억에 내가 다녔던 유치원에서는 저금을 위한 통장을 유치원생들에게 만들어 준 것 같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원장님께 그 통장을 검사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강당에 유치원생들이 모여 원장님 훈시를 듣던 그날 내 손에는 엄마의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던 것이다. 

 

한 명씩 단상으로 나가서 원장님께 두 손으로 통장을 드렸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매니큐어를 칠한 손가락이 부끄럽고, 친구나 선생님께 놀림을 당할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손가락에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은 어쩌면 성별을 떠나 지금도 행해지는 어린이들의 본능적인 장난이 아닐까? 

 

나는 그 당시 왜 그렇게 창피했던 것일까? 남자답지 못한 소심함과 자존심이 강해서였을까? 입에 통장을 문 나의 행동에 당황한 선생님은 내게 통장을 다시 두 손으로 건네라고 지시했고, 나는 또 다시 통장을 입에 물었다.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거나 혼을 내지 않았던 여 선생님이 그날 나에게 화를 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나 봐..."

 

한 참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린다.

 

에필로그

 

아이와 10분 남짓한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의 모습에서 내 유년시절을 보았다. 필요 이상의 고집은 좋지 않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자존심이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